천문학자들은 이름짓기로 먹고 산다?
천문학자들은 이름짓기로 먹고 산다는 인식은 천문학의 학문적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천문학은 기본적으로 현상학(phenomenology)입니다.
천문학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현상들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그 현상들은 대개 인간 인식의 지평 너머에 있기 때문에, 대개 우선적으로 "기록"하게 됩니다.
이러한 기록의 순간에 어떤 현상이나 천체에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지금도 혜성을 발견하면, 자신의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초적인 이름들을 대중이 일일이 머리 속에 두지는 않습니다.
이벤트(event)가 있을 때만 대중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예를 들어, 천문학자 핼리의 이름이 붙은 핼리 혜성이 나타날 때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게 됩니다.

한편 최근의 천문학은 그러한 현상들은 기존의 지식 또는 인식상의 체계에 따라 분류합니다.
클래스로 나누거나 범주별로 분류하는 방식을 주로 취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또 "이름"이 탄생합니다.
이 이름들은 일반인이 학교에서 배웁니다.
행성, 혜성, 별, 성단, 은하, 은하단 등등입니다.
요새 잇슈가 되고 있는 태양계 행성들의 예에서는 pluton이라는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싶군요.
아마 지구형 행성, 목성형 행성에 이어 천왕성형 행성이라는 개념을 정의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의 집합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인간 의식의 지평이 넓어지면, 그 이름은 바뀔 수도 있고, 새로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이름이 추가되어 자연이 더 복잡해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수금지화목토천해명에다 세레스, 카론, 2003 UB313을 추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기준은 ExtraD님이 설명한 대로, 해에 속박되어 둘레를 돌 것, 자체 중력으로 형성된 구형 천체일 것,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할 것. 요 세가지일 듯하네요. 자체 중력으로 형성된 구형 천체라는 것은 형성과정에서 작은 미시행성들이 모여서 비중차이에 의해 내부구조를 갖는 것을 강조한 조건일 것 같습니다. 지구의 내부에 맨틀과 핵이 있고, 목성도 내부구조를 갖는 것에 주안점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소행성이나 혜성은 이러한 분화 과정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분화과정의 유무는 그 천체의 표면 성분이 태양계가 형성될 당시의 성분과 같으냐 다르냐를 결정하게 되므로, 태양계 형성 초기의 성분을 알려면, 소행성이나 혜성을 연구해야 합니다.

Ceres는 케레스라고 읽지 않고 '세레스'라고 읽습니다. 이것은 전에는 소행성(asteroid)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에 행성으로 추가하려는 모양입니다. 사실 화성-목성 사이에 소행성이 많이 몰려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소행성 띠(asteroid belt)"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소행성들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요? 예전에 하나의 큰 행성이었는데, 충돌을 해서 박살이 났다고들 생각하기 쉬운데, (제 전공이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언뜻 생각해 보면 그렇게 되면 그 파편들이 일정한 궤도에 몰려서 해 둘레를 돌고 있기 힘들 것 같군요. 어쩌면 태양계가 처음 생길 때, 그 영역에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하나의 행성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카론(Charon)은 새런이라고 읽어야 할까요? 그러나 우리는 흔히 카론이라고 읽습니다. 이것은 명왕성의 위성으로 알려져 있었던 것인데, 달이라고 하기에는 명왕성과 비슷한 크기라서 문제입니다. 이것은 지구의 위성은 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왜 명왕성의 위성인 카론만 행성으로 취급하려 할까요? 아마도 그 형성 메카니즘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구의 달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여러 학설이 있습니다만, 지구가 떨어져 나갔거나 지구와 함께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반면에 명왕성의 위성인 카론은 명왕성과 관계없이 형성되었다가 명왕성에 붙잡힌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2003 UB313은 명왕성 궤도 너머에서 새로 발견된 행성인데, 발견자는 제논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만, 아직 궤도가 인정이 되지 못했는지 이름을 븥이지 않고 있는 것 같군요.

우리가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일 때도, 지구형 행성과 목성형 행성을 나누어 생각한 까닭은 그것들이 갖는 성질에 따라 분류한 것이고, 그러한 분류를 토대로 태양계 형성 이론은 만들어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존 태양계 형성 이론에서는 태양계에 원시 원반이 생기고, 태양에서 나오는 복사압과 뜨거운 온도 때문에 안쪽에는 휘발성 물질이 사라지고, 나머지 무거운 물질들이 뭉쳐서 지구형 행성이 만들어졌고, 바깥쪽은 수소와 헬륨과 같은 가벼운 기체들도 살아남아 있을 수 있어서 목성과 토성과 같은 목성형 행성이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명왕성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은 기존 태양계 형성 패러다임에서 굉장히 골치 아픈 문제였지요. 더군다나 지구의 위성인 달도 사실은 행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달에 인간이 가서 지진계를 설치하지 않았다면, 달의 내부 구조를 알 수가 없었겠지요. 달을 행성으로 보는 인식은 그러한 정보의 누적에 의해 생긴 것입니다. 또한 태양계뿐만 아니라 다른 별 둘레를 도는 행성들이 발견되었고, 목성보다 큰 행성이 수성보다 가까운 궤도를 도는 경우가 많이 발견 되었는데, 지금까지 우리의 인식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현상이었습니다. 또한 다른 천체들을 관측함으로써 우주가스로부터 태양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있고, 막강한 컴퓨터를 활용하여 태양계 형성 과정을 시뮬레이션해 보면서, 천문학자들은 태양계 형성에 대해 더욱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2달 이름을 외우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듯이, 행성이 12개가 된다고 해서 우리 기억력에 별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쓰는 교과서, 백과사전, 교구, 박물관 및 전시관의 진열물들을 죄다 갈아치워야 하니, 행성 이름을 조금 추가하는 일이 생각보다 천문학적인 돈이 걸린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행성이라는 것의 개념을 새로 규정하는 일이 이름 붙이기보다 더 중요한 잇슈입니다.

지금 국제천문연맹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이름짓기 또는 이름 바꾸가가 아니라,이러한 인간의 태양계에 대한 이해를 총체적으로 논의하여 그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게 무슨 대수냐"라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아예 이야기할 자격도 없구요. 왜냐면 일단 자신에게 시간 낭비일 테니까요.
by 도원 | 2006/08/21 11:22 | 도원눌어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at 2006/08/23 14:5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도원 at 2006/08/23 16:06
그렇다면 '카론'이라고 하면 안되겠네요.
제논은 제 기억력에 의존했기 때문에 제나가 맞는 것 같습니다.
지적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아이수 at 2006/08/26 13:03
아예.. 8개로 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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