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효성과 충성을 강조한다.
논어에 나오는 "愼終追遠"이란 말을 아시는지?
심청은 효도의 화신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 뱃사람들에게 끌려가는 심청를 심봉사가 지팽이를 짚고 따라가는 참혹한 장면을 그려놓고,
"심청이는 효녀인가?" 발제문을 적어 놓고는, 그걸 초등학교 꼬맹이들에게 토론을 시키고 있다.
이런 의문형 발제문은 심청은 효녀가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는 것이다.
어떤 동화책은 심청의 어머니인 죽은 곽씨부인의 착한 친구인 뺑덕 어미가 심청에게 "이런 불효막심한 년! 아비 눈을 뜨게 하려고 네 목숨을 버린다고? 너 죽고, 네 애비가 눈을 뜨면 그 눈에서 피눈물밖에 더 나겠냐?"라고 호통을 친다.
이런 하수들에게 우리 애덜을 맡기다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심청의 삶을 가만히 생각해 보라.
금새 "심청=예수"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심청은 그녀의 부모가 명산대천에 빌어서 낳은 아이다. (신성성(divinity)이 있다.)
심청은 순교를 한 것이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사회적인 부조리에 의해 강제로 인당수로 몸을 던져진 것이 아니다.
심청이 밥을 빌어 먹기 시작한 것도, 심청이 없는 틈에 아버지가 죽을 뻔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고,
남녀칠세 부동석이 지엄한 법도인데 처녀가 밥을 빌러다녔으니 상당한 자기 희생을 한 것이다.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정화수 떠놓고 기도를 밤마다 하였고
그 결과, 꿈에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인당수로 가기로 결심한 것이지
뱃사람들이 처녀 제물을 찾을 때 충동적으로 결정한 일도 아니다.
심청은 깊은 종교적인 믿음과 기도의 결과, 자발적으로 인당수에서 "순교"를 한 것이다.
죽음의 세계인 용궁에서 어머니를 만나고,
연꽃을 타고 지상으로 돌아와 (즉 부활하여!)
그녀의 희생의 결과로, 심봉사가 눈을 뜨고, 나머지 사람들도 개평으로 눈을 뜨게 되고, 심지어 눈먼 짐승들까지도 일시에 눈을 뜬다. (이게 판소리 심청가의 가사이다.)
심청의 효심에 감동한 것이 부처님이건 하느님이건 하나님이건 그 행위는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녀는 인간성(휴매니즘)의 화신이자 구원자인 것이다.
한마디로 춘향가는 한물 간 판소리 사설이 아니라 그것은 종교인 것이다.
한국의 교과서나 아동서 작가들은
마치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두고
"마리아가 자식을 잃은 슬픔에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겠냐?"라고 따지는 것과 같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원전을 보면 간단히 알 수 있는 것을, 학자입네 하는 인간들이 그것을 볼 생각도 안하고
개똥철학이나 읊어대고 앉아 있으니...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이 이렇게 저급하니깐
우리 아이들이 품성을 잃고 별별 이상한 짓들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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